워마드에 대한 전우용 역사학자의 일침


이런 글 써 봤자 ‘한남충 재기해’ 소리나 들을 게 뻔한 건 알지만, 사람들 헷갈리게 만드는 기사가 자꾸 올라오니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지난 번 ‘페미니스트 시장’이라는 슬로건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던 녹색당 신지예씨가 “‘문재인 재기해’는 여자들이 그동안 당한 거에 비하면 별일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생각과 언설이 한국 래디컬 페미니즘의 핵심 문제를 드러낸다고 봅니다.

운동(= movement)이란 인간이 자신을 성찰하고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하는 실천 활동입니다. 과도하게 단순화하면,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한 인간 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을 조건지우는 현상, 구조, 관계 등은 완전히 파괴해도 되는 게 있고 그럴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모택동은 이를 각각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으로 구분했지만, 동양 전통 사상인 음양오행론의 상극(相克)과 상생(相生) 관계로 이해해도 좋을 겁니다.

신분해방운동은 신분제도 철폐운동인 동시에 ‘귀족 신분을 가진 사람’과 ‘노예 신분을 가진 사람’ 자체를 소멸시키는 운동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때 군중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아네트를 단두대에 올린 건, 그들이 ‘귀족체제를 대표하는 구체적 인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구호 중 하나는 ‘구병입경(驅兵入京) 진멸권귀(盡滅權貴)’였습니다. “병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서 권세 있는 귀족들을 다 죽여 버리자“는 뜻이었죠. 귀족이 사라진다고 해서 인간이 멸종하지는 않습니다. 상극(相克) 관계에서는 옛날부터 ‘다 죽이자’라는 구호가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겁니다.

그러나 ‘여성해방운동’은 ‘남성 지배체제’ 해체 운동이되 ‘남성 젠더를 가진 사람’ 자체를 소멸시킬 수는 없는 운동입니다. 남성 젠더가 소멸하는 동시에 인류 자체가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상극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운동은 흔히 폭력투쟁이나 내란의 양상을 보이지만, 상생 관계는 그렇게 해서 바뀌지 않습니다. 꼭 맞는 비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아동 인권 유린 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운동은 주로 캠페인의 형식을 취했습니다. 설득과 선전이 기본 운동 방식이었던 거죠. 일제 강점기 방정환은 ‘어린이 주간’을 만들고 어린이들의 집회와 행진을 조직하곤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린이들이 ”어른들 다 죽어라“라고 구호를 외쳤다면,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문 대통령은 인격을 가진 ‘구체적 인물’입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이 당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여성들 개개인에게 ‘구체적 인간’을 저주할 권리가 부여되는 건 아닙니다. 여성 일반에 대한 혐오감을 특정한 여성을 살인, 폭행함으로써 표출한 남성을 용납해서는 안 되듯이, 남성 일반에 대한 혐오감을 특정한 인간을 저주, 모욕함으로써 표출하는 여성도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아무리 오랫동안 비대칭적 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여성 일반에 대한 혐오감'이나 '남성 일반에 대한 혐오감' 모두 관계의 기본 성격을 몰각한 '범죄적 감정'입니다. 분노를 이해하는 것과 분노의 패륜적 발산을 용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어도, 나쁜짓은 나쁜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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